KOBICian’s Story
- 작성자 조광훈 (KOBIC 연구기사)
- 작성일2024-11-24 14:06:57
- 조회수204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C)는 우리나라 바이오 분야의 데이터와 실물소재자원 관련 연구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운영되는 기관입니다. 본 센터에서 어느덧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회의, 행사 및 평가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국내 전문가들을 뵙고 자문과 발표 및 평가를 부탁드렸습니다. 이력뿐 아니라 추진 중인 활동 사항을 보면 세계 어느 전문가 그룹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 생명과학 연구, 인프라 및 정책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의견과 조언을 제공해 주셨고, 대면 회의가 끝난 뒤에도 서면과 메일을 통해 연구 중인 내용까지 전달해 주실 때는 깊은 열정까지 느껴지곤 하였습니다.
All of Us, UK Biobank 등 선진국들의 유전체 데이터 구축이 앞서 진행된 가운데,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유전체 데이터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이라는 다부처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관련 분야에서는 역대 최대급 예산이 편성된 대규모 사업인 만큼, 매주 해당 부처와 기관이 모여 점검 회의와 협의체 회의 등을 해왔고,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의 관심과 조언이 수시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사업에서 유전체 정보 생산 및 분석이라는 중요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KOBIC은 최근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의 유전체 관련 용역과제 선정 평가를 위해 엄청난 외부의 관심 속에 기술제안서 평가위원회 구성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평가대상 업체 또는 장비와 연관된 이해당사자가 포함되지 않도록 하고, 원내와 원외 위원 비율을 조율하는 등 사전에 면밀한 검토와 협의를 거쳐 자격 조건을 수립하였습니다. 이를 충족하는 평가위원 후보를 다양한 관련 분야 및 기관으로부터 추천받아 3배수 이상의 평가위원풀을 구성한 뒤 무작위로 평가위원을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전 과정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하였습니다. 이렇게 글로 써 놓으면 단순해 보이지만 실무자에게는 대단히 까다롭고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위원회 구성 및 제안서 평가를 모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자 커뮤니티 규모를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는 분야별 학회의 동향과 규모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학회마다 수시로 변동하는 회원 수를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고, 회원 수를 공개하는 학회도 많지 않습니다. 차선책으로 학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커뮤니티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분야를 나누는 기준 또한 다양하겠지만 제3차 국가생명연구자원 기본계획(’20~’25)에 14대 소재 클러스터를 기준으로 분야별 학회를 살펴보면 주로 70-80년대에 설립되었고, 한국미생 물학회는 1959년에 설립되어 그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유전체 정보 생산 및 분석 분야는 융합과학으로 다른 기초 학문과 왕성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커뮤니티 범주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지만, 대표적인 학회에는 한국유전체학회와 한국생명정보학회가 있습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개시된 1990년과 맞물려 1989년에 설립된 한국유전체학회는 국내 유전체 분야 역사를 대표하고 있고, 한국생명정보학회는 1998년에 설립되어 학계와 산업계 간 왕성한 교류의 장을 제공하는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인 11월 5일부터 9일까지 덴버에서는 미국 인간유전학회(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 ASHG)의 연례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ASHG는 미국 연구자 및 관련 기업이 참여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간 유전체 연구 커뮤니티 중 하나로서 75년의 역사와 8,0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작년 수준(8,200여 명)을 능가하는 참가자가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필자도 참가하여 최신 연구 동향을 직접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 개최지인 덴버는 고산지대답게 한국보다 춥고 폭설이 겹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유전체 분야 관련 학교, 회사, 연구소에서 참석하여 Colorado Convention Center를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이제 생명과학은 데이터 분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2024년 노벨 화학상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단백질 구조를 예즉하는 모델인 알파폴드의 개발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를 위해서 방대한 생물학적 데이터 – 단백질 구조, 다중 서열 정렬, 단백질 접촉 지도 등 – 가 사용되었습니다. 인공지능 및 데이터가 함께하는 현대 과학은 앞으로 무병장수와 같은 난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올해부터 본격 시작된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은 국민적 기대감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고의 팀이 모여 투명하고 효율적인 사업 운영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업의 단계가 끝나는 5년 뒤, 또는 10년 뒤에는 대규모 인간 유전체, 임상 샘플 및 의료정보 등 대규모 자원이 구축되어 국내 유전체 기반 연구 인프라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본 사업과 함께 우리나라 유전체 전문가 커뮤니티도 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산업계와 학계가 공생하여 발전하고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KOBIC이 일등 공신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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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IC에서 일하면서 달리기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매년 종합건강검진을 위해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평소에 숨이 약간(또는 많이) 차게 만드는 운동 및 근력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항상 ‘아니오’라는 민망한 답을 써 오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지난 8월 5일부터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별다른 시설이나 장비가 필요하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도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퇴근 후 주 3~4차례 달리기를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오늘은 또 얼마나 힘이 들지 늘 걱정이 됩니다. 워밍업은 매번 충분하지 않아서 출발 직후에는 몸이 무겁고 관절도 부드럽게 돌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적 드문 한밤의 갑천변 산책로를 무념무상으로 뛰다 보면 점점 몸이 더워지고, 어느덧 대략 3 km 지점의 반환점을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면서 동네 입구의 아파트 불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마치 재부팅 뒤 컴퓨터가 깨끗해지듯, 오늘 하루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온갖 스트레스와 잡념은 싹 지워집니다. 겨울밤의 추위는 별다른 방해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덥고 땀이 난다고 하여 함부로 웃옷 지퍼를 내리고 몸을 차갑게 하면, 저처럼 체온 관리에 실패하여 심한 감기에 걸려 연말까지의 달리기 계획을 모두 접어야 할 수 있습니다. 달리기의 유익함을 틈나는 대로 주변에 설파하다가 감기에 자주 걸려 체면을 많이 구겼습니다. 역시 ‘런린이’(러닝 + 어린이, 달리기 초보자)의 입방정이 문제였던 것이겠지요.
멀게만 느껴지던 일 년의 끝이 손에 잡힐 듯 겨우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신발끈을 고쳐 매듯 마음을 다잡고 KOBIC에서의 업무를 시작하였는데, 어느덧 꽤 많은 거리를 달려왔고 이제는 주변의 풍경도 여유롭게 감상할 수준이 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인 차원의 걱정 말고는 특별히 신경을 쓸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쏟아지는 사안의 중대성을 재빠르게 판단하여 처리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결재 버튼을 눌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였는지, 과연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판단하였는지, 지금 내리는 결정이 조직의 책무에 부합하는지, 미래를 위한 대비는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 센터장이라는 페르소나에 충실하기 위해 감정을 더욱 절제하고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하는지, 조직의 생존을 위해 외부에 대해 지금보다는 더욱 싸움닭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도 제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물음표가 맴돌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짐을 저 혼자만 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너무나 헌신적으로 일하는 KOBICian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큰 과오 없이 지난 일 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과학자라고 하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지식의 탐구에 몰두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KOBIC은 바이오 소재 정보와 데이터의 교환소, 즉 ‘장터’와 같은 곳으로서 저마다 목소리를 내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서로가 만족하면서 가치 교환을 이룰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창고는 튼튼해야 하고, 재고 목록은 늘 제대로 업데이트되어 있어야 하며, 비가 새거나 차고 더운 바람이 들어오면 곤란하고, 때로는 차 한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쉬어 갈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느낀 KOBICian은 연구자 또는 엔지니어로서 개인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일은 잠시 내려놓고 일절 사심 없이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느끼는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일상은 매주 KOBICian’s Story 원고를 매만질 때입니다. 게시할 새로운 글을 자발적으로 투고하는 것은 업무에 바쁜 KOBICian들께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각자 KOBIC 내에서 어떤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에서도 이 글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고 알려 왔을 때에는 정말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간혹 다른 글에 비하여 조회수가 월등하게 높은 글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글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가 무엇일지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보게 됩니다. 워낙 좋은 내용으로 글을 썼고, 또한 제목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뽑았기에 외부에서 검색을 타고 유입되는 방문자가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혹은 글을 쓴 사람 자체가 KOBIC 내부에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엇, 안 그래도 평소에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도대체 무슨 글을 올렸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조회수가 올라갔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쪽이 사실이든, KOBICian 개인이 갖고 있는 원석과 같은 가치를 더욱 많은 사람에게 노출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2025년의 KOBICian’s Story는 3월에 다시 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한 해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KOBICian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작성자정해영
- 작성일2024-12-30
- 조회수173
친구 같은 AI를 표방하며 개발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던 대화형 챗봇 '이루다'가 무분별하고 정제되지 않은 편향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여 사용자에게 잘못된 내용을 제공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어 결국 서비스를 중단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례는 데이터의 수집도 중요하지만, 수집된 데이터를 품질관리하여 사용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데이터 품질관리는 수집된 데이터의 정합성과 신뢰성 등을 높이기 위해 행하는 데이터 관리, 개선 활동을 말합니다. 데이터 품질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게 데이터 품질을 진단·개선하여 고품질 데이터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데이터를 식재료라고 한다면, 사용자가 이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을 요리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상한 재료를 활용하여 요리를 하면 맛있는 요리가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정크 데이터를 수집하여 제공한다면 사용자는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시스템을 앞으로는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데이터의 품질관리는 일회성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합니다. 사전에 데이터 유형을 체계적으로 정의하여 그에 부합하는 데이터가 입력되었는지 점검하고, 내용에 일관성이 있는지, 모순된 데이터는 없는지, 중복된 데이터가 있지는 않는지 등을 전반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데이터의 품질관리는 데이터의 생애주기 전반에서 데이터를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바이오 분야의 데이터 품질관리는 그 데이터가 우리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중요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낮은 품질의 유전자 시퀀싱 데이터를 사용한다면 오류가 있는 질병 모델을 생성할 수도 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후속 연구나 실용적 응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데이터 품질관리는 단순히 데이터를 관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연구과 응용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C)에서는 국가 바이오 R&D 사업을 통해 생산된 바이오 데이터를 통합 수집·제공하기 위한 범부처 바이오 연구데이터 통합 플랫폼인 국가바이오데이터스테이션(K-BD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K-BDS에 등록되는 연구데이터의 품질관리와 큐레이션을 위해 주요 바이오 빅데이터 분야인 단백체, 대사체, 화합물, 바이오 이미지 분야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데이터 품질선도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전체와 나머지 분야는 KOBIC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K-BDS의 품질관리는 등록자가 입력 과정에서 시료 정보 또는 실험 내용이 형식에 알맞게 작성하였는지, 필수 입력 항목에 값을 모두 입력하였는지, 결과 파일 업로드는 하였는지 등을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validation check를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여 등록자가 데이터를 제출 완료한 후에는 품질관리자가 메타 데이터와 실 데이터 간의 내용이 일치하는지 직접적으로 확인하고 자체 개발한 데이터 품질 검증 파이프라인을 사용하여 파일의 오류 검사, 적정성 검사 등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일한 데이터가 여러 번 중복적인 내용으로 작성되진 않았는지 확인하여 품질 검증을 완료하게 됩니다. 등록 완료 이후에도 데이터의 최신화와 보안 유지 등의 과정으로 제3의 연구자가 이 데이터를 신뢰하여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습니다.
KOBIC은 이상의 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점진적으로 자동화와 인력 재배치를 실시하고 있으며, 매년 사이트 고도화를 통해 품질관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등록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제 종료 기한에 임박하여 데이터 등록이 몰리는 경향이 있어 운영에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K-BDS에서는 최대 7일 안에는 품질관리를 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품질관리 과정에서 메타 데이터 또는 실 데이터에 수정 사항 또는 오류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명확한 사유와 함께 등록자에게 반려하며 수정 후 재 등록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기치 않게 처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으므로 등록자는 시간의 여유를 갖고 등록을 진행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품질관리 선도센터와 저희 KOBIC은 매년 표준등록양식의 개정, 홈페이지 개편, 품질관리 프로세스의 고도화 등을 통하여 데이터를 쉽고 편하게 등록하고 등록된 데이터를 믿고 사용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미국 NCBI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데이터의 품질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K-BDS도 세계적인 데이터 저장소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작성자최진혁
- 작성일2024-12-23
- 조회수180
파도가 2~3미터까지 치는 거친 바다, 멀미로 뒤틀리는 속과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006년 여수 거문도에서의 첫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해양실습은 그렇게 시작되었죠. 출렁이는 배 위에서는 괴로웠지만, 역설적으로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오히려 평온함이 찾아왔습니다. 푸른 물속에서 느낀 그 고요함과 평화로움은,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마주한 것 같은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이빙을 시작한 초반 몇 년간은 멀미와의 싸움이었습니다. 다이빙 전날이면 어김없이 귀밑에 “키미테”라는 패치형 멀미약을 붙이고 잠들곤 했죠. 그래도 파도가 높은 날이면 배 위에서 진땀을 빼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몇 해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미가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바다가 내 몸을 받아들여 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제가 중학생 무렵부터 즐기시던 취미였기에, 아버지가 다이빙을 다녀오실 때마다 들려주시던 바다 이야기는 항상 신비롭고 궁금했습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아버지께서 “한번 배워볼래?”라고 물으셨을 때,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의 오랜 친구 분도 스쿠버다이빙을 배우셨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은 기본적으로 2인 1조 버디 시스템으로 진행되는데, 한번은 셋이 함께 함께 입수했습니다. 수중에서 이동하던 중 아버지와 아저씨의 방향이 나뉘는 상황이 발생했고, 저는 순간적으로 고민이 되었습니다. 둘 중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망설이던 찰나, 저와 경험이 비슷한 아저씨 곁으로 가야겠다고 판단했죠. 둘 다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라 아저씨가 혼자가 된 것을 인지하는 순간 당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저 옆에 누가 있는 것만으로 안정되지 않을까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제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가족끼리도 자주 식사하는 자리를 갖곤 했는데, 앞선 일화를 이야기했을 때 아주머니께서도 고마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다이빙이 단순한 레저 활동이 아닌, 서로의 안전을 책임지는 진지한 활동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느낍니다. 많을 일을 같이 하고 있는 고건환, 김재희 연구원이 저에겐 그때 아저씨 곁을 지키던 저와 같이 안정감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묵묵히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KOBICian 으로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죠.
단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상급 라이선스를 취득하려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스페셜티(특별 프로그램)가 있습니다. 앞서 거문도 해양 실습을 포함하여 몇 회의 다이빙을 통해 오픈워터 다이버 라이선스(태권도로 비유를 하자면 노란띠 정도??)를 취득했으며, 그다음 라이선스를 목표로 여수 학림도의 야간 다이빙을 경험했습니다. 이 야간 다이빙은 제 다이빙 여정 중에서도 있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 중 하나입니다(초급 강사 라이선스까지 취득).
수면 위로는 별들이 총총 떠있고, 수면 아래로는 우리의 수중랜턴 불빛만이 유일한 빛이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배에서 입수할 때의 긴장감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컸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으니까요. 사실 일몰 전에 시작해서 칠흑까지는 아니었지만 저에겐 그렇게 느껴졌답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만난 바다는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수중랜턴이 비추는 좁은 시야 안에서만 펼쳐지는 세상은 마치 우주를 탐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떠다니는 듯한 느낌, 어둠 속에서 더욱 강조되는 고요함, 그리고 랜턴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작은 플랑크톤들의 군무까지, 낮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생물들이 밤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낸 것도 신기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랜턴을 끄고 잠시 멈춰 있을 때였습니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마치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한,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때때로 멀리서 비치는 다른 다이버의 랜턴 불빛이 마치 먼 우주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보였고, 그 순간만큼은 정말 우주 유영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수심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보통 공기통(산소통이 아닙니다) 한 개로 40분 정도 다이빙이 가능한데 그날만큼은 시간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매 순간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신비롭게 다가왔으니까요.
그날의 특별함은 수중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나눈 대화는 더욱 즐거웠죠. 그날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으로 썰어둔 회와 구이, 제철 해산물에 소주 한 잔이 곁들여지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습니다. 낮과는 전혀 다른 바다를 경험한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바다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을 맛보는 기분이었달까요?
누군가 다이빙의 매력을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날 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느낀 고요함, 그 속에서 발견한 특별한 반짝임,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동료들과의 따뜻했던 그날 밤을......
- 작성자송왕호
- 작성일2024-12-15
- 조회수175